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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 세기의 사랑 안재형 자오즈민이 출연했다.


1980년대 아직 냉전의 기류가 여전했던 그 당시


우리나라 탁구 국개대표 안재형은 중국의 최고의 탁구 스타 선수 중국의 자오즈민을 보고 첫 눈에 반했다. 운명처럼 그들은 가까워졌고, 서로의 마음을 편지로 주고 받았다.
하지만 당시 한국과 중국은 미수교상태.
두 사람은 소식도 전하지 못한채 반년의 세월을 보내게 되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마음이 닿기에는 시간도 물리적으로 한계가 있었다.
특히 언어적 장벽이 있었기에 편지를 주고 받아도 이해 할 수가 없었던 안재형은 종일 중국어 테이프로 공부를 하며 그녀를 향한 마음을 전달해 나갔다.
1986년 아시안게임 탁구 최종 5인에 들어간 안재형


자오즈민은 당시 세계적인 스타선수. 안재형은 그녀에게 걸맞는 남자가 되기위해 탁구 훈련도 놓치지 않았다. 그래야 그녀를 국제 경기에서 만날 수 있으니 말이다.
자오즈민도 중국 국가대표가 되어 서울에서 재회하게 되었다.
자오즈민도 금메달을 획득했다. 경기 후 두 사람은 곧 헤어져야 했지만. 안재형은 자오즈민에게 편지를 썼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이라 했다.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당신을 좋아하게 됐는지 믿어지지 않는다.
사랑은 말로 하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것임을. 나는 당신을 사랑해요. 나를 잊지 말아요.
나도 당신을 잊지 않을게요" 1987년 일본의 한 신문사가 그들의 열애설을 보도해 버린것. 안재형이 준 트레이닝복을 입은 자오즈민 사진
안재형은 중국과의 매치끝에 금메달을 획득했고
국내 뿐 아니라 전 세계 언론이 당대 최고의 탁구 스타들에게 이목이 쏠렸다.
당시 국가적 분위기가 있었기에 두 사람은 언론을 통해 둘의 관계를 아니라 해명했고, 만났을 때도 모른 척했다.
둘은 비밀 연애를 이어 나갔다. 둘은 서로의 부모를 만나 결혼까지 생각했지만.
정치적 파장을 우려해 결혼설을 부인했다.
이후 안재형과 자오즈민은 스웨덴 주재 한국 대사관에 혼인신고를 했다. "좋아하니까 이런 기회와 사랑을 잃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도박처럼 제 인생을 걸었다" 1989년 10월 19일 두 사람은 드디어 부부가 되었다. 다행히 세상이 변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사랑을 도와달라 부탁했고
사회주의 장벽이 무너지고 있었고 두 사람 덕분에 한 중 관계가 부드러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두 사람은 1989년 12월22일 올림픽공원에서 전통혼례로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 이 후 두 사람에게는 두 사람을 똑 닮은 아들이 태어났다. 아들 안병훈
탁구스타였던 부모는 그 아들에게 탁구가 아닌 골프를 시작하게했다.
누구보다 탁구의 어려움을 알기에 아들은 다른 길을 가게했다. 부모의 열정을 그대로 닮은 아들은 229개 대회 출전. 우승은 0회
하지만 그는 PGA 투어에서 우승 없는 선수 가운데 가장 많은 상금을 쌓은 선수로 유명하다. 누적 상금 2153만달러(약 310억원) PGA 투어에서 상금은 성적순이다.
단 한 번의 우승 없이 이만한 돈을 벌었다는 건, 수년간 세계 최고들 사이에서 꾸준히 상위권을 지켜왔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2024년 10월, 인천 송도.
제네시스 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했다
안재형은 국가대표 주치의에게
우승 후 어머니 자오즈민을 부둥켜안고 두 사람은 함께 울었다. “이렇게 좋을 줄 몰랐습니다.
뒷바라지해주신 어머니와 아버지, 할머니가 지켜보는 한국에서 우승해 정말 감격스럽습니다.”
부모의 왕좌가 아닌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나가는 아들. 그 아들 곁에는 여전히 세기의 사랑 안재형과 자오즈민이 함께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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