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가 소식, 생각보다 반응이 크게 이어지고 있어요.


하영 (사진: 하영 인스타그램)


배우 하영의 증조부 안상호를 둘러싼 친일 논란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대정친목회 활동과 이토 히로부미 추도회 참여, ‘일본 사람과 똑같다’는 과거 발언 등에 이어 이번에는 일제강점기 일본어 잡지에서 그가 ‘일선동화의 선구’로 소개된 기록까지 새롭게 확인됐다.
18일 일요신문 단독 보도에 따르면 1913년 9월 발행된 일본어 잡지 ‘조선공론’ 제1권 제6호에는 ‘일선동화의 선구 조선인 남편·일본인 아내 평판기’라는 제목으로 안상호와 그의 가정을 소개한 글이 실렸다.
‘일선동화’는 일본과 조선의 동화를 뜻하는 표현으로, 훗날 일제가 내세운 ‘내선일체’보다 앞선 시기부터 사용됐다.
‘조선공론’은 1913년부터 1944년까지 발행됐으며 조선에 거주하던 일본인을 주요 독자로 삼았던 일본어 종합 잡지다.
특히 안상호는 창간 초기 마련된 ‘일선동화’ 연재에서 첫 번째 사례로 소개됐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잡지가 묘사한 안상호의 모습은 상당히 구체적이다.
필자는 경성에 위치한 안상호의 진료소를 직접 방문한 뒤 그의 외모와 진료 모습을 설명하면서, 무엇보다 말씨와 태도가 일본 본토 사람과 다르지 않다는 취지로 평가했다.
또한 일본에서 의학을 공부한 그의 이력을 소개하며 조선인 가운데 보기 드물게 재기가 넘치고 근면한 사람이라고 치켜세웠다.
당시 일본인 사회의 시선에서 안상호가 이른바 ‘동화된 조선인’의 대표적 사례로 받아들여졌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조선공론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일본인 아내 가와구치 이소코와의 결혼생활 역시 비중 있게 다뤄졌다.
보도에 따르면 안상호는 일본 유학 시절 의친왕 이강의 의사로 일하면서 당시 의친왕의 시중을 들던 이소코를 만나 1907년 결혼했다.
‘조선공론’은 두 사람의 만남을 연애담처럼 풀어내면서 안상호를 ‘운이 좋은 남자’, ‘복이 많은 남자’라고 표현했다.
1913년 9월 ‘조선공론’에 실린 안상호 기사 (사진 속 인물은 안상호와 무관) 경제적으로 성공한 모습도 등장한다.
진료소가 번창하면서 불과 2~3년 사이 택지와 전답까지 생겼다고 기록됐다.
이후 1926년 ‘매일신보’에는 안상호가 시흥군 일대에 10만여 평 규모의 산림을 소유하고 이를 일본인 관리인이 관리했다는 기록도 등장한다.
더욱 눈길을 끄는 것은 안상호가 일본 측 기록에서 ‘모범’ 또는 ‘동화’의 사례로 등장한 것이 이번 한 번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1907년 일본 의학 전문지 ‘의해시보’에는 안상호 같은 인물을 중용하면 조선의 의학교육에서 모범이 될 것이라는 평가가 등장했다.
1913년에는 ‘조선공론’이 그와 일본인 아내, 일본식으로 키우던 자녀들을 ‘일선동화의 선구’로 소개했고, 1918년 ‘매일신보’에서는 그의 가정을 ‘일선동체의 가정’으로 조명했다.
1918년 ‘매일신보’에 ‘일선동체의 가정’으로 소개된 안상호 가족 특히 1918년 기록에서 안상호는 자신이 일본 사람과 다를 바 없다는 취지로 말하면서 조선 옷을 가지고 있지 않고 조선 사람들과도 별로 교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여기에 1916년 조선인과 일본인의 친목·융화를 표방한 대정친목회 평의원으로 활동하고 이토 히로부미 추도회 준비위원으로 참여한 이력까지 연이어 확인됐다.
1918년 매일신보에 일선동체의 가정으로 소개된 안상호 가족
논란이 확산되자 민족문제연구소도 지난 14일 입장을 냈다. 연구소는 안상호의 대정친목회 평의원 참여 등을 근거로 그의 친일 행위가 명백하다고 판단했다.
친일인명사전에 안상호가 수록되지 않은 것은 2009년 발간 당시 확보된 자료로 선정 기준에 미달해 수록이 보류된 것일 뿐, 미수록 자체가 친일 행적이 없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설명했다.
다만 연구소는 선대의 잘못을 후손에게 그대로 묻는 연좌제식 비난 역시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이번 논란의 핵심은 하영 개인에게 증조부의 책임을 지우는 데 있기보다, 그동안 가족의 자랑으로 소개됐던 인물의 역사적 행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있다는 지적이다.
하영은 지난 12일 자필 사과문을 통해 가족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만으로 증조부의 삶을 단편적으로 알고 있었다며, 관련 자료를 직접 확인하는 과정에서 친일 행적을 알게 됐다고 밝혔다.
또한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한 상태에서 증조부를 가족의 자랑처럼 언급한 점을 반성한다고 사과했다.
하지만 사과 이후에도 과거 기록은 계속 추가되고 있다.
‘4대째 의사 집안’이라는 하영의 방송 발언을 계기로 시작된 가족사 논란이 100여 년 전 일본 측 기록의 발굴로까지 이어진 상황.
특히 이번 ‘일선동화의 선구’ 기록은 안상호가 당시 일본인 사회에서 어떤 시선으로 평가받았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논란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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