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탑건 지금 보니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한국의 관련 이야기가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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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하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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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기수를 자유로 돌려라!-북에서 온 이웅평’ 편이 공개되었습니다.

해변가로 흘러들어온 라면봉지를 보며 인생이 바뀐 남성 한국의 '탑건', 북한의 전투기 훈련사였던 공군 전술개발 훈련본부의 이웅평입니다.

당시는 냉전시대였는데 1983년 초엘리트집안의 이웅평이 직접 전투기를 몰고 귀순을 요청해 난리가 났었죠.

당시에 이웅평은 "전쟁을 방지하겠다는 입장에서부터 의결을 결심하게 됐다"라며 남한으로 넘어온 이유를 밝혔습니다. 하지만 그의 신분이 북한에서 초엘리트급이고,

우리나라에서는 위장간첩을 의심했어요.

북한의 1급 군사기밀을 공개했어요.

북한에서 전투기 조종사까지 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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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상금을 받았어요. 당시 은마아파트 1채 가격이 2천만원이었답니다.

당시 대한민국도 반공에 대한 의식과 열기가 엄청나던 시기라 이웅평의 반공 아이돌로 불리며 강연과 행사로 바쁜 시간을 보냈습니다.

한 해에 900회가 넘는 일정을 소화하며 대통령보다 바쁜 인물로 꼽히기 까지 했지요.

당시 이웅평을 보기위해 여의도 광장에 150만명이 모이기도 했대요 장성규 표현으로는 지금의 BTS급의 인기라고요.

이웅평은 자신의 결백을 뒷받침하기 위해

사실 이웅평이 귀순을 결심하게 된 건 초엘리트 집안 이었던 그의 집안에 위기가 찾아왔기 때문이에요

친척 중 한 명이 남한을 향했다는 정보가 있었고 이로 아버지가 숙청을 당하게 되었어요. 당시 이웅평의 아버지는 "네 살길은 네가 찾아라.

여기 있으면 네 앞날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라고 말했어요.

거기다 이웅평이 바닷가 휴가를 갔다 떠내려면 라면봉지에 '변질이나 훼손된 제품은 교환해 준다'는 문구를 보고 북한 체제에 대한 회의감이 생겼다고 했어요.

하지만 한국 생활이 이웅평에게 무조건적으로 좋았던 것은 아니에요.

이웅평은 보상금으로 당시 15억6천만원의

항상 암살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던 그는 공군관사에서 신혼생활을 해야했고 공군관사에서도 도청을 당하는 생활을 했어요.

이웅평의 아내 박선영씨는 보안사령관을 찾아가 "하루를 살더라도 나가서 살게 해달라, 아님 이혼을 하겠다"라고 말했고 민간아파트에서 살게 된 그들은 두 자녀를 얻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웅평의 건강에 이상이 왔습니다. B형 간염으로 인한 간경화. 시한부 판정을 받았습니다. 아내의 간이식 마저 거절.

하지만 아내의 지극한 보살핌과 노력으로 수술을 받고 건강을 회복했습니다. 하지만 회복한 후 이웅평은 약을 먹으라는 아내를 의심하기 시작했고. 약을 거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갑작스런 그의 죽음. 죽기 전 이웅평은 아내 박선영씨에게 "그동안 나 때문에 고생 많았다. 안 해도 될 고생했다"며 미안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나올 때마다 가슴을 졸이며, 때론 마음 아파하면서

아내 박선영씨는 갑작스런 남편의 건강악화의 이유는 북에 있는 가족들의 사망소식이었다고 했습니다.

이웅평은 통일이되면 북에 있는 가족들을 위해 돈을 쓰기 위해 보상금을 한 푼도 쓰지 않았을 정도였는데 그의 가족이 숙청을 당했다는 소식에 그는 삶의 끈을 놓아버린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웅평. 냉전시대 한 가운데에서 외롭게 부모와 가족들을 그리며 산 인물입니다.

아무리 BTS급으로 인기가 있었고 많은 보상을 받았다 한들, 두고 온 부모형제가 얼마나 그리웠을까요.

그의 바람처럼 우리나라의 통일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봅니다.

여러분은 이번 한국의 소식, 어떻게 보셨나요?

댓글로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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